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아편전쟁 (문단 편집) == 어록 == >우리는 [[영국|귀국]]이 [[청나라|이곳]]에서 6~7만여 리[* 약 23,500km 정도다.]나 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. >그럼에도 이적의 배가 무역을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은, 이곳에 큰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. >(중략) 즉, 귀국에서 가져간 부는 모두 중국인의 정당한 몫이라는 것입니다. >그런데 그들은 무슨 권리로 [[마약|중국인을 해치는 약]]을 사용하는 것입니까? >그들이 고의로 우리에게 해를 입힌 것이 아닐지언정, 탐욕스럽게 이득을 갈구하는 그들은 타인을 해친다 하여도 상관하지 아니할 것입니다. >질문을 허락하신다면 묻겠습니다. >'''[[도니 버밀리언|폐하의 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?]]''' >---- >― [[임칙서]]가 [[빅토리아 여왕]]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. 이 편지는 1840년 1월에 영국에 도착했으나, 영국 정부는 이 편지를 정식 외교 문서로 인정하지 않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전해지지도 않았다. 다만 [[타임즈 #s-3|타임즈 신문]]에 실리기는 했다고 한다.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Lin_Zexu#Campaign_to_suppress_opium|#]] >[[개소리|아편의 해악은 술보다 적습니다.]] >---- >― 영국 외무대신 파머스턴 경[* 당대 유럽은 마약의 위험성을 잘 몰랐기에 정말 그렇게 여겼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으나,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주장이다. 당장 후술할 글래드스턴도 아편을 팔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을 '국가를 불명예로 빠트리게 될 행위'라고 강경하게 비판했고, 동시대의 지식인 [[카를 마르크스]] 역시 [[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|아편을 마약의 대명사격으로 취급한 것은 유명하다.]] 이 말인즉 시대적 한계로 '마약의 메커니즘이 지금만큼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'고 하면 모를까 정말 당대의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아편의 해악이 술보다 적었을 것이라고 여겼으리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.] >중국 영토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그 법률에 따르지 않는 [[외국인]]에 대해 중국이 식량 공급을 거부한 것이 어째서 중국의 죄가 되는지 본인은 모르겠습니다. 나는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지, 그 수행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판단할 능력이 없지만,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. 이것만큼 부정한 전쟁, 이것만큼 영국을 불명예로 빠뜨리게 될 전쟁을 나는 이제껏 보지도 못했고, 책에서 읽어본 적도 없었노라고. > >국가의 명예는 더럽혀졌습니다. 국가의 불의는 국가의 몰락을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입니다. 이 전쟁의 승리와 그 이득은 확실합니다. 그러나 아무리 이득이 크더라도 그로 인해 영국의 국왕과 [[대영제국]]이 입을 명예, 위신, 존엄성의 손실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. >---- >― 자유당 하원의원 [[윌리엄 글래드스턴]][* 이후 총리가 되며 1889년에 인도 아편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제정한다.]의 의회 연설 中[* 지학사 한국사교과서 212페이지에 수록됨.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. "청에게는 아편을 금지할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. 그들은 아편의 무서움을 알고 있습니다. 하지만 우리 영국의 외무 장관은 청의 정당한 권리마저 짓밟으며 이 부정한 무역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. 나는 세상에 이렇게 부정하고 치욕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." 1840. 4.]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아편전쟁, version=528)] [[분류:1840년대 사건사고]][[분류:중영관계]][[분류:청나라의 역사]][[분류:동아시아의 전쟁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